
2024.11.01 ~ 2024.11.23
허현숙 : 불건너 강구경
#허현숙#불건너강구경#허현숙초대전#스페이스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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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허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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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소
스페이스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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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관일
일,월, 11/5~7 임시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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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02-54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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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309길 62
전시소개/
<불건너 강구경> 전시서문 | 엄윤선 스페이스 엄 대표
1.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처음 허현숙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이게 어떤 장르인지 아리송해했다. 전시때마다 하루에도 몇번씩 ‘무슨 그림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고, 펜화라는 둥 어반스케치라는 둥 관객 맘대로 해석하는 걸 들으면 괜히 빈정이 상했다. 흑연, 연필이라는 재료의 편견 때문에 한국화라는 진지한 정체를 못알아보다니! 갤러리 대표는 관객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작품 설명에 최선을 다했다. 괜히 연필로 그렸다고 우습게 볼까봐 작품의 난이도와 가치를 강조했다. 관객을 설득하는데 작가의 수상경력은 큰 도움이 됐다. 공신력있는 데이터이니 말이다.
2. 국공립미술관의 학예사들과 평론가들은 역시나 전문가였다. 왠만한 갤러리들보다 먼저 작품을 꿰뚫어봤다. 한국화를 왜 연필로 그리느냐는 공격적인 질문을 하면서도 공모 심사에서 작가를 당선시키는 결단을 놓치지 않았다. 그 덕택에 허현숙 작가는 왠만한 국공립 미술관과 레지던시, 공공기관의 공모를 두루 거쳤고 또래 작가들보다 눈에 띄게 아주 많은 상을 받았다. 올한해에만 한국은행과 광주은행 선정작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우수전속제 작가로 뽑혔다. 작가의 말로는 설마 될까, 시도나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공모에 지원했다는데 흠… 겸손한 척 내숭은.
3. 작품이 상을 받는다는 것은 ‘예술성’과 ‘미술학적 가치’가 인정을 받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재현된 작가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한국의 재개발 시대를 반영하며 모두의 기록이자 공통된 역사가 된 의미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역사의 기록 - 혹시 이 진지한 키워드가 작품을 무겁게 만들지 않을까. 결코 아니다. 어린 시절 자랐던 동네의 소실, 성인이 되어 집을 찾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부동산 과열, 그리고 지금 재건축의 열기를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그녀의 시각은 언제나 따뜻한 농담을 놓치지 않는다. 작품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인간미 충만한 유머와 위트 덕에 허현숙의 작품은 보는 사람들 누구든 공감하고 동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4. 연필 끝에서 탄생한 이미지는 절제된 호흡에서 비롯된 중첩된 선, 농도와 질감의 섬세한 조정으로 탄탄한 밀도감을 보여준다. 화면의 단단한 구성은 도시의 변화와 개인의 삶의 밀접한 관계를 더욱 힘있게 설득한다. 이번 전시에서 ‘불건너 강구경 하듯’ 편안하게 팔짱을 끼고 작품들을 바라보면 사라진 옛동네에 대한 기억과 재건축 이후 새롭게 탄생할 도시풍경에 대한 기대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작가의 상상력이 아닌 일일이 발품을 팔아 현장을 둘러보고 자료를 수집해 그들을 다시 예술로 승화시킨 실질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평론/
자연과 공존하는 기억의 집들 |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허현숙은 종이에 흑연으로 특정 풍경, 건물을 재현한다. 이 그림은 소묘에 해당되는 동시에 연필을 수묵의 맛을 일구어내는 차원에서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작가는 분명 연필/수묵의 이중적 트릭을 의식적으로 활용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재료의 특성은 분명 다르지만 둘 다 동일하게 검은색의 톤 조절 아래 단일색의 스펙트럼을 유연하게 확장시키면서 그림을 조절해나간다는 공유성이 있다. 작가는 연필의 농도와 흑연이 지닌 색과 질감을 섬세하게 매만지면서 종이에 스며드는 먹의 농담 조절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묵화를 닮은 연필화를 제작했다. 그것은 연필로 가능해진 수묵화의 어느 경지를 펼쳐 보인다.
본래 경질의 연필/흑연은 종이의 표면을 긁어 새겨나가듯이 흔적을 각인한다. 흑연은 종이의 표면을 공략하고 날카롭고 뾰족한 연필심이 손의 압력에 힘입어 밀려 들어가는 형국을 보여준다. 연필은 직립해서 들어가기도 하고 점차 각도를 좁혀서 표면에 문질러지기도 하는 등 연필심의 형태 자체에서 파생한 여러 압력의 흔적을 풍성하게 그려 보이는 재료적 특성이 있다. 연필을 특별하게 다루는 이 작가는 흑연을 부드럽게 펴나가며 먹의 번짐에 유사한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마치 동양화의 여러 준법을 연필 하나로 해명해 보이고자 하는 의지도 읽힌다. 자신에게 잘 맞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재료이자 먹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여겨지는 연필이 그렇게 선택되었다는 생각이다.
오밀조밀 모여 이룬 풍경의 요소들을 정밀하게 재현하되 전체적인 검정의 색상 체계 안에서 녹아들도록 조율하고 있다. 결국 연필이 지닌 색채들의 최대한 차이를 발생시킨다. 맑고 가벼운 검은색에서 무겁고 진한 검은색으로의 전환이 우선적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검은색이라고는 했지만 이 색채는 맑은 회색에서 어두운 검정까지의 폭이 무척이나 넓게 구사되고 있어서 연필에서 나오는 단일한 색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하는 선에서 이루어진다. 더구나 다양한 건물과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화면은 연필이 보여주는 밀도 높은 재현술과 만나 다채로운 농담 변화로 조성된 수묵풍경화를 접하는 착시를 경험한다. 이것이 하나의 트릭이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것은 건물과 자연이 공존하고 있는 풍경이다. 기와집과 빌딩, 암벽과 나무, 우거진 풀등이 화면 상단에서 하단까지 가득 채우고 있다. 원근법이 적용되기 어려운 이 구도는 그림을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시선을 이동하면서 보게 만드는 프레임이다. 그것은 마치 전통적인 동양화 프레임인 족자나 두루마리, 병풍 안에서 활용되던 시방식의 차용으로 보인다. 그렇게 사각형의 화면에 마치 지도처럼 그려진 이 풍경은 윤곽선을 따라 바탕면에서 분리되어 떠오른다. 따라서 그림이 그려지는 바닥, 화면의 물리적 실체인 종이와 그 안에 그려진 그림을 이원화하고 있다. 그로인해 특정 풍경이 외곽의 윤곽선을 따라 절취되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그려진 풍경의 자리를 유난히 독립시켜 강조하거나 그 자리를 의미있게 부각시키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또한 사진을 편집하거나 이미지의 윤곽을 따서 저장하는 활용술이 이 그림에 적용되고 있다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다분히 디지털적인 방법론에 의해 이루어진 풍경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러한 느낌은 풍경 자체에서 보다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작가가 공들여 그린 풍경은 단일 시점에 의해 포착된 풍경이 아니라 다양하고 이질적인 여러 장소, 건물들이 작가에 의해 화면에서 종합적으로 수렴된 것이다. 여러 이미지를 차용해 가지고 와서 이를 한 화면에 가설한 그림이다. 동일한 집들이 연쇄적으로 반복되기도 하고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과 부감의 시점이 공존하기도 한다. 이것은 편집된 풍경, 허구적이고 가상적인 풍경이다. 두 번짹 트릭이다.
그런데 작가가 그린 풍경 안에는 무수한 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들은 공통적으로 동시대의 삶에서 밀려난 집들, 망각되거나 향수 어린 집들이다. 근대기에 건립된 석조건물과 기와를 인 자그마한 구멍가게들, 지붕 위에 놓인 타이어와 연통, 장독대의 옹기들, 다양한 간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리고 그 사이 곳곳에 커다란 암벽과 나무와 풀을 심어놓았다. 이 풍경은 지나간 시간의 향수와 기억을 머금은 특정 집들이기도 하고 서서히 현재의 공간에서 망실 되어 가는 집들이기도 하다. 다양한 집들은 그림의 적절한 소재로 차용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작가에게 심리적인 상처를 안겨준 것이기도 해서 이를 수집, 편집해서 오롯이 저장하거나 기록해두어야 할 필요성이 나름 절실하게 대두되었기에 가능한 그림이 되었을 것이다.
동시대 도시에서의 삶은 격렬한 시간의 흐름과 자본의 속도와 압력에 의해 공간 자체가 현란하게 변화를 거듭한다. 욕망에 의해 수시로 재편되는 공간이 동시대의 풍경이다. 사람들의 삶과 일상과 역사가 두텁게 축적되어 이룬 공간이 빠르게 사라지고 재편되는, 이른바 ‘기억상실증’을 강요하는 시대다. 기억을 이룬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역사와 개인의 정체성이 소멸 내지 증발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기억이 없는 이들은 오로지 현재의 욕망 안에서 오그라든다. 그래서 작가는 추억과 향수를 여전히 안타깝게 저장하고 있는 오래된 집들의 이미지를 수집해서 이것들이 불변하는 자연과 공존하는 나름의 이상적인 풍경을 그림 안에 마련하고 있다. 바위와 나무는 상처와도 같은 오래된 집들을 보듬으며, 그 집에 살고 있는 이들의 신산한 생애와 사연을 감싸안으며 부풀어 오르고 있다. 마치 그 집에 사는 이들의 소망과 희망을 말풍선처럼 가시화한다. 이것은 또 다른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 산수화의 현대적 번안이다. 여러 맥락에서 전통적인 산수화를 재해석하고 이를 활용해 동시대의 풍경으로 전환해내는 힘이 이 작가의 연필그림 안에 숨 쉬고 있다.
작가노트/
“ 언 40이 다되어서야 알았다.”
“난 강건너 불구경이 아닌 이미 그 불 속에서 태어난 듯 싶다.”
불에 디이고 그을려져도 살아가는 법, 이왕 사는거 열심히 살아보는 것,
그 모든 결심과 행동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흡사 같지 않을까.
오늘을 열심히 사는 저 건물, 저 땅, 저 물
‘결말’을 알 순 없지만 매우 ‘열심히’ 라는 것,
그 행위에 힘을 보태고 싶다.”
2024년 개인전을 앞둔 30대 후반의 작가의 소회 中 …
<프롤로그_>
이번 전시 <불건너 강구경>은, 언제나 관조자의 입장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새로운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30대에 들어서며 불어닥친 ‘사회인’이라는 꼬리표와, 감당해내기 어려운 부양에 대한 정신적 압박, 그 모든 폭풍 속에서 어느덧 40대에 가까워진 지금, 조금은 익숙해진 시선으로 잠시 주변을 바라보고 공감할 수 있는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주름하나 없는 조막만한 손이 나의 손을 잡으며 의지할 때, 나의 노동이 나의 비타민의 행복으로 다가올 때, ‘아,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굳센 파이팅을 외치며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요즘의 나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노점에서 하루종일 소리치며 장사하던 아빠의 모습이 비춰진다.
“이런 모습이었을까.”
길을 걷다 불현듯, 수많은 간판을 매달고 일하는 건물, 수백년동안 꽃과 나무를 지키며 굳건히 본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 끊임없이 흐르는 저 물, 무엇하나 ‘열심히’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가 그렇다.
시대가 지나고, 시간이 흘러 발전을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것,
언제나처럼 결말을 알 수 없지만 ‘열심히’라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
나는 그것에 작은 힘을 보태고자 한다.




작가약력/
허현숙 작가는 숙명여자대학교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2014년 겸재정선미술관 대상 수상과, 2017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11기, 2018년 성북문화재단 팝업레지던시 1기 작가로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SEMA 미디어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 대전시립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부산문화재단, 성북문화재단, 도봉문화재단 등 국내 다수의 국공립 미술관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해외에서는 201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Hipermerc’ art에 참여하고, 2019년 워싱턴한국문화원 오픈콜 선정작가, 2021년 KT&G 상상펀드 10주년 기념작가 선정과, 국제수묵비엔날레 홍보전 선정작가로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에 참여하였습니다. 2024년엔 광주은행과 한국은행 선정작가 선정과 더불어 전속작가제 선정작가로 발탁되어 평단과 화랑계 양쪽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집’이라는 소재를 통해 시대흐름 속 일상의 역사를 기록하는 본인은, 비약적 산업발달의 경험자로써, 도시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없어진 ‘유년기의 집’을 회상하며 그리던 것을 시작으로, 집과 인간과의 연관관계를 통해 결국 스쳐 지나가는 현재, 사회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Awards
2024 전속작가제 선정작가
2024 한국은행 올해의 신진작가 선정
2023 광주화루 10인의 작가 선정 (입선)
2021 노원문화재단 신진작가 선정
2014 겸재정신미술관 ‘내일의 작가’ 대상
2011 중외제약 영아트 어워드 특선
2011 한성백제미술전 우수
2011 대한민국청년작가미술대상전 우수
2008 메트로미술대전 특선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겸재정선미술관, 한국은행, GS칼텍스, ㈜일신방직(일신문화재단), ㈜세림, S4 Capital plc, 류홀딩스, ESPACIO, A-factory(총신학술재단) 외 다수 개인소장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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